퇴직 후에도 여전히 새벽에 눈이 떠지는 나, 습관은 기억보다 강했다
퇴직을 하면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 중 하나는 아침에 늦잠을 자는 여유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이제는 더 이상 알람 소리에 억지로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시계를 보면 아직 새벽 다섯 시. 직장 다닐 때 출근 준비를 하던 시간보다 더 이른 시간에 눈이 떠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면 수면 시간이 짧아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있었기에, 퇴직 후 수면 패턴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하며 넘기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이른 기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새벽녘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아무리 다시 눈을 감아도 잠은 오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이 현상이 단순히 생물학적 노화나 환경 변화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십수 년 이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며 하루를 살아온 삶은 일종의 몸에 밴 규칙이었다. 회사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업무 수행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 모두를 특정한 흐름 속에 묶어놓는 삶의 틀을 만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도 그 중 하나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생활 리듬은 마치 시계태엽처럼 내 몸 속 어딘가에서 자동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반복해온 리듬은 뇌의 명령이 아니라 몸 자체의 반응으로 굳어졌고, 퇴직이라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그 틀을 단번에 무너뜨릴 수 없었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고 한다. 어떤 일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그 행위는 더 이상 생각의 결과물이 아니라 반사적인 반응으로 굳어진다. 특히 아침에 눈을 뜨는 일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된 행동은 뇌의 학습과 무관하게 몸의 리듬에 깊게 각인된다. 그런 점에서 퇴직 후에도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직장 시절의 삶이 내 몸에 남긴 흔적처럼, 습관은 나의 현재를 끌어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직장 리듬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 퇴직 후에도 멈추지 않는 긴장감
직장을 다닌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의 구조를 강제당하고, 신체와 정신 모두가 일정한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의 리듬은 철저하게 외부 기준에 맞춰져 있었다. 업무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회의 일정에 맞춰 생각을 정리하며, 누군가의 지시에 반응하는 몸은 항상 깨어 있어야 했다. 퇴직을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긴장감이 얼마나 내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퇴직 후에도 새벽에 눈이 떠지는 이유는 어쩌면 습관보다는 긴장감의 잔재 때문일지도 모른다. 출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지각하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인 불안, 혹시 회사에 연락이 온 건 아닐까 하는 긴장감이 오랜 시간 쌓여 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이미 직장을 그만둔 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그 순간 머릿속은 아직도 하루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히 수면 패턴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과 상황이 결합된 리듬이다. 새벽은 직장인에게 있어 하루의 시작이자 긴장감이 가장 큰 순간이다. 어쩌면 나의 몸은 여전히 그 시간에 맞춰 불안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제는 회의도 없고 상사의 눈치를 볼 일도 없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여전히 직장 생활의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퇴직이라는 변화는 생각보다 큰 충격이다. 단순히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살아온 방식 전체를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퇴직 후의 삶은 새로운 시작이기 이전에 하나의 해체 과정일 수 있다. 그 해체의 과정 속에서 내 몸은 여전히 직장 시절의 리듬을 반복하며 낯선 자유에 어색해하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떠, 여전히 긴장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진짜 퇴직은 출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새벽을 자유롭게 쓰는 것
많은 사람들이 퇴직 후의 자유를 상상할 때 늦잠을 자고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러나 실제로 퇴직 후 새벽은 생각보다 자유롭지 않다. 눈은 저절로 떠지고, 무엇을 할지 몰라 방 안을 서성이다가 결국 멍하니 텔레비전이나 휴대폰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은 자유라기보다는 공백에 가깝다. 퇴직이라는 변화는 단지 회사에 가지 않는 삶이 아니라, 시간을 스스로 채워야 하는 삶으로의 전환이다. 그 전환이 익숙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하루가 길고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진짜 퇴직은 새벽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었다.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나의 하루를 나 스스로 정리하고 움직여야 진짜 퇴직의 의미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새벽 시간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책을 펼쳤다. 정해진 커리큘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 성과를 확인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같은 시간에 책을 읽으며 하루를 여는 일은 내가 나의 시간을 스스로 구성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새벽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억지로 자려 애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새벽에 눈을 뜨는 것이 직장 시절의 습관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나만의 루틴이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직장 리듬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은 더 이상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퇴직 후의 삶이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진짜 퇴직은 육체적인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잠들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직장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증거이며, 진정한 퇴직자의 자유다.